남북 간 전쟁이나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로 한반도의 평화가 파괴될 경우, 남한이 부담해야 할 경제·사회적 비용은 막대합니다. 남북한 사이의 전쟁은 소규모 국지전일지라도 한국 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면전인 경우에는 남한의 거의 모든 지역이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 또한 남한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붕괴에 따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흡수통일 과정에서 안게 될 남한의 부담은 인구규모와 국민소득을 따져볼 때 서독이 안았던 부담보다도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남한이 쌓아올린 경제적 토대를 한번에 허물어뜨리는 것은 물론, 현재까지 이룩한 사회경제적 장치들을 대혼란에 처하게 만들 것입니다.
평화비용은 한마디로 평화를 지키고 창출하기 위한 비용입니다. 평화비용은 통일 이전에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지불하여야 하는 비용으로, 우선 정치·군사적 비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한반도 전쟁 위기를 억지하고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지출하는 모든 형태의 비용이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평화비용에는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에 소요되는 비용, 사회문화교류를 위한 비용 등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남북경협과 대북지원 등에 지출되는 비용이라고 하더라도 남북 간 신뢰를 제고하고 상호 이해를 확장시키며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대감을 완화하는 등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비용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첫째, 시급성과 당위성입니다.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간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대두될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상당한 비용 지출이 수반될 것입니다. 둘째, 편익성입니다. 평화비용은 남북한 통일에 대비하는 사전적(事前的) 비용이자 수익적 성격을 띱니다.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에 소요되는 대부분의 비용은 소모성 비용이라기보다는 통일을 위한 선(先)투자비용적 성격이 짙습니다. 특히, 북한의 사회간접시설과 관련된 비용 지출은 통일에 따라 소요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전 북한의 경제발전 도모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지출이 남한에서 생산한 물자의 형태로 제공되기 때문에 남한 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효과도 발생합니다.
반면 분단비용은 분단으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 다시 말해 남북한 사이의 대결과 갈등으로 발생하고 있는 유·무형의 지출성 비용을 말합니다. 유형의 분단비용에는 군사비, 이념·체제 유지비, 외교·행정비 등 분단 관리를 위해 직접 지불해야 하는 비용 등이 해당됩니다. 무형의 분단비용은 분단으로 인해 사회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비용이 통일을 통해 대부분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분단비용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소멸되는 소모적 비용입니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통일비용은 통일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비용입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 남북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통합하는 데 소요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비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비용은 통일방식과 통합과정의 양상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위기관리비용, 경제재건비용, 제도통합비용, 사회보장비용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통일비용은 소모적 성격의 분단비용과는 달리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비용으로, 통일에 따른 편익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투자적 성격을 지닙니다. 통일에 따른 편익에는 경제적 편익과 비경제적 편익이 있습니다. 경제적 편익으로는 분단비용 소멸 및 남북한 경제통합에 따르는 편익이 있습니다. 비경제적 편익은 분단 해소로 인한 안보 불안 및 전쟁위기 해소의 정치·군사적 편익,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비롯한 북한 지역 주민의 인권·자유 신장의 인도적 편익, 학문·문화적 발전과 관광·여가·문화서비스 기회 향상 등 사회·문화적 편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에 따른 통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비용은 분단비용을 줄이면서 훗날 통일비용도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